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소설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몇 권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달라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도서를 신청하는데, 지금까지 너무 개발 관련된 서적들만 신청한 것 같아 괜찮은 책이 없나 찾아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책 안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을 소설가이자 러너라고 칭하는데, 너무나도 저명한 소설가라는 위치와 러너를 동등선상에 두고 얘기하는 게 흥미로웠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십분 이해가 되었다.
- 무엇이 공평한가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법이다. (71p)
-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모순 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가면서 그래도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127p)
-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145p)
- 기록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을 때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서 확실하게 늘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자. 육체의 감퇴라고 하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187p)
-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집요하고 엄격하고 그리고 참을성 있게 개별 파트의 나사못을 조여 나간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시간을 들이는 것이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된다. (244p)
- 만약 심신의 단련에 필요한 고통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트라이애슬론이나 풀 마라톤이라고 하는,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에 도전하라 것인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 다다를 수도 있다. (256p)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가 잘 운영하고 있던 장사를 접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일도, 소설을 쓰다가 달리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수십번 풀 마라톤을 뛴 러너가 된 것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많이 언급되고 있는, 소위 말하는 메타인지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러너로서 크고 작은 대회들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목표를 가지고 임할 때 꾸준함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