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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회고록]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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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ubetcha
- @zubetcha_
들어가며,
3월 회고록인데 본의 아니게 늦어졌다. 개인적인 일로 정신 없었던 3월과 4월 초를 지나며 느낀 것들을 짧게나마 남겨보려고 한다.
기획문서는 꼼꼼히
3월에 팩토리 관련 프로젝트를 하나 맡게 되었는데, 이전의 급박했던 2월의 경험을 발판 삼아 최대한 기획 문서와 요구사항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UX와 관련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었다. 라이브 일자를 바꿀 수 없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이미 개발 기간이 픽스된 상태로 시작했는데, 문서를 꼼꼼히 본 덕분에 일정 산정도 어느정도 맞게 할 수 있었고 프로젝트도 잘 마쳐 곧 라이브를 앞두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컨플루언스 개인 문서에 프로젝트 관련 요구사항들을 FE 관점으로 정리해봤는데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나의 늙은 고양이를 보내며
4월 10일 어제, 14년을 함께한 또깡이가 고양이별로 여행을 떠났다. 멍때리다 울다, 또 멍때리다 울다가를 반복하다가 또깡이가 남기고 간 것들, 또깡이와 함께한 소중한 기억들을 어딘가에 적어두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어 개인 블로그를 택했다. SNS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싶지도 않았고 보여주기식처럼 보여지는 것도 싫었다.
또깡이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0년 5월 1일에 청계천 동물거리에서 2만원을 주고 데려온 고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책임하고 손가락질 받을 만한 행동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유독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그렇게라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다. 당시 동물거리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있었고 한 철창 안에 여러마리의 동물들이 부대껴 있었다. 철창을 두 세층씩 쌓아서 거리에 내놓고 동물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건강해 보이고 활력 있는 아이들은 가장 윗층, 아닌 아이들은 아랫층에 자리해 있었다. 또깡이는 그중 아래층 철창에서 힘 없이 누워 있던 아이였고, 나는 또깡이를 본 순간 운명처럼 내가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데려왔을 때가 아마도 2개월 정도 였을텐데, 몸집이 당시에 내가 쓰던 핸드폰인 매직홀과 비슷했다. 그렇게 데려온 또깡이는 아래층 철창에 있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아픈 곳 없이 잘 지냈다. 한 번 모래를 바꿔준 후에 잠깐 혈뇨를 한 일 빼고는 흔한 잔병치레도 없었다. 중성화 수술을 한 후로 살이 급격하게 찌긴 했지만 살이 쪄도, 나이가 들어가도 항상 귀여웠고 천사같이 착했다.
딱 한 번 또깡이가 속을 썪인 일이 있었는데, 바로 집을 나갔던 일이다. 속 썩였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또깡이가 가출하게 된 건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 크다. 잠시 문이 열려 있던 사이에 가출을 했었는데, 엄마는 울면서 동네에서 또깡이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다. 겁이 많던 또깡이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길가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엄마 목소리를 따라 골목골목 담을 넘어 이틀만에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또깡이가 7살이 되던 해에 모모를 데려왔다. 또깡이 이름의 유래인 똥깡아지처럼 항상 막내였던 또깡이는 이때부터 모모의 형아가 됐다. 처음부터 서로 잘 지냈다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예상보다 빠르게 합사가 이루어졌고 그렇게 같이 지금까지 동고동락했다. 장난꾸러기 모모의 짓궂은 장난도 곧잘 받아주었다. 모두 또깡이가 착하고 착한 덕분이었다.
외향적이고 모임과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으신다. 또깡이는 그런 엄마에게 말로 이룰 수 없는 행복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엄마는 누워 있는 걸 좋아하시는데 또깡이는 그런 엄마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같이 잠을 자거나 티비를 보고는 했다. 또깡이는 엄마 발소리만 듣고도 1층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문앞에 가서 미리 기다리곤 했다. 엄마는 그런 또깡이를 아들이라 불렀고, 실제로도 아들처럼 지극히 아꼈다.
어제 오후에 또깡이의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는 병원으로부터의 연락에 급하게 퇴원을 시키고 집에 도착했을 때, 또깡이는 이미 떠난 것처럼 힘 없이 축 늘어져 있고, 시선은 먼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동생이 집에 도착할 때 까지 그 아프고 힘든 몸으로 버티고 버텨주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를 생각하고 배려해 준 것이다. 또깡이는 엄마가 도착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의 품에서 힘겹게 숨을 거두었다.
또깡이는 우리 가족에게 무한한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을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이다. 인간은 몇 배는 긴 수명과 높은 지능을 가지고도 한 번 이루기 힘든 사랑을, 또깡이는 우리 집에 온 그 순간부터 항상 베풀어 왔다. 가족에 대한 정이 많지 않던 나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고,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닭가슴살을 좋아하던 또깡이,
티비 보는 걸 좋아하던 또깡이,
엄마 다리 사이에 누워 자는 걸 좋아했던 또깡이,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걱정 돼 문 앞에서 기다리던 또깡이,
복도와 옥상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던 또깡이,
항상 아기같고 천사같던 또깡이,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보고 싶어도 무슨 수를 써도 볼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가장 슬프게 느껴진다.
또깡아 누나한테,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나중에 누나도 소풍가면 꼭 마중나와 줘야 해
사랑해 너무 보고싶어